주돈이, 정호, 월터 러셀, 그리고 삼매에 든 윤홍식의 천상 문답
[등장인물]
- 주돈이 (周敦頤, 염계 선생, 1017~1073): 북송 도학(道學)의 개조. 비 개인 뒤의 바람과 달 같은 ‘광풍제월(光風霽月)’의 인품을 지닌 대학자. 구차한 예법(禮法)에 매달려 연명하던 유학의 명맥을 되살리고자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지었으나,당대 사유 체계의 한계인 ‘이오(二五: 음양과 오행)’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 정호 (程顥, 명도 선생, 1032~1085): 주돈이의 제자이자 북송 성리학의 정점. 온화하고도 투철한 직관으로 천리(天理)와 인간의 본심(本心)을 매개 없는 ‘혼연일체(渾然一體)’로 체득했다. 스승을 지극히 공경했으나, 스승의 《태극도》가 지닌 ‘이오(二五)’의 한계를 꿰뚫어 보고 평생 예를 갖춰 침묵으로써 그 도상을 넘어섰다.
- 월터 러셀 (Walter Russell, 1871~1963): 우주를 ‘부동의 자성광(Still Magnetic Light)’이 세운 입방체 파동장(Cubic Wave Field)과 ‘움직이는 전기적 분극광(Moving Electric Light)’이 빚어내는 구체(Sphere)의 ‘율동적 균형 교호작용(Rhythmical Balanced Interchange)’으로 밝혀낸 과학자이자 철학자. 과학(형이하학)의 언어로 형이상학을 입증해 낸인류 최초의 파동 기하학자.
- 윤홍식 (홍익학당 대표): 지상에서 깊은 삼매(三昧)에 들어 천상의 영점(Zero Point)을 유영 중인 구도자. 앞서 나가르주나(용수) 및 월터 러셀과의 문답을 통해 ‘강제된 이오(二五)의 매트릭스’가 지닌 실체를 깨닫고 지상으로귀환하던 길에 두 유학의 거장을 만난다.
S#1. 광풍제월(光風霽月)의 연못가 — 스승의 도상(圖象)과 제자의 침묵
[프롤로그]
나가르주나(용수) 보살과의 찻자리를 마치고 빛의 회랑을 나란히 걷고 있는 월터 러셀과 윤홍식.
앞서 걸으며 러셀로부터 요순(堯舜) 이래 굳어진 ‘이오(二五)의 매트릭스’와 중심을 참칭한 권력의 비밀을 전해 들은 윤홍식의 가슴에는 아직 그 전율이 가시지 않고 있다.
그때, 두 사람이 지나가는 허공의 한 자락에 맑은 연꽃 향기가 스며들며, 고요한 연못과 소박한 정자 하나가 수묵화처럼 피어난다. 생전 주돈이가 머물던 염계(濂溪)의 서당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이다.
정자 위에는 온화하고도 기품 있는 미소를 머금은 주돈이(周敦頤)와, 단정히 두 손을 모으고 선 제자 정호(程顥)가 마주하고 있다. 두 사람 사이의 허공에는 주돈이가 그린 다섯 단계의 평면 도상—《태극도(太極圖)》—이 은은한 먹빛으로 떠 있다.

주돈이가 허공의 《태극도》를 바라보며 부드럽고 너그러운 음성으로 입을 연다.
주돈이
(따뜻한 눈길로 정호를 바라보며)
백순(伯淳, 정호의 자)아, 네가 내 곁에서 학문을 논하고 떠난 뒤로 나는 늘 너의 그 맑은 눈빛을 잊지 못했단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길고도 고단한 세월이었다. 먼 옛날 성현들의 도통(道統)이 희미해진 이래 한(漢)·당(唐)의 천여 년 세월을 지나며, 제왕의 통치 체제 곁에 기대어 있던 우리 유가(儒家)의 학풍은 천지와 호흡하던 본래의 활달한 생명을 잃고 말았지. 천하의 뜻있는 인재들은 모두 노장(老莊)의 현묘한 도와 붓다(佛陀)의 광대한 가르침으로 모여들고, 유학자라 불리는 이들은 경전의 글자나 풀이하는 훈고(訓詁)와 문장을 다듬는 사장(詞章), 그리고 외면적인 ‘예법(禮法)’의 절차에만 매달려 겨우 숨통을 이어왔었으니...
정호
(스승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스승님께서 그토록 기울어진 유학의 불균형을 바로잡고자 홀로 고군분투하셨던 그 깊은 우환(憂患)을 소자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주돈이
(허허롭게 미소 지으며《태극도》를 가리킨다)
그래. 그래서 나는 도가와 불가의 기세에 밀리지 않을 우주의 본원(本源)을 세워보고자 이 《태극도》를 그리고 《태극도설》을 지었다. 무극이 곧 태극이요, 태극이 움직여 양(陽)을 낳고 고요해져 음(陰)을 낳으며, 이 음양(2)이 변하고 합하여 수·화·목·금·토 오행(5)을 낳으니, 이 ‘이오의 정수(二五之精)’가 묘하게 합하여 만물이 화생한다고 말이다.
헌데 백순아, 너는 내게 배우는 내내 질문을 멈추지 않더니, 내 곁을 떠난 뒤로는 평생 단 한 번도 제자들에게 이 《태극도》를 언급하지 않았더구나. 내 도상에서 벗어난 네 마음속에 어떤 물음이 남아 있었는지, 이제 이 천상의 자리에서스승에게 들려줄 수 있겠느냐?
정호
(옷깃을 여미고 지극히 정중한 어조로 답한다)
스승님, 비 개인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같으신(光風霽月) 스승님의 기상을 소자는 평생토록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감히 스승님의 뜻을 저버리려 함이 아니오라, 소자가 목격한 천리(天理)와 마음의 경계를 스승님의 도상 속에 담긴 ‘이오(二五)’의 틀로는 도무지 매끄럽게 담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돈이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한다)
그래, 네가 본 천리와 마음의 경계가 어떠하였느냐?
정호
소자가 보기에 하늘의 이치(天理)와 인간의 마음은 그 사이에 털끝만한 틈도, 단계도 없는 ‘혼연일체(渾然一體)’였습니다. 도(道) 밖에 사물이 없고 사물 밖에 도가 없으니(道外無物 物外無道), 어짊을 체득한 자는 만물과 본래 한 몸입니다.
하오나 스승님의 《태극도》를 펼쳐놓으면, 본래 하나인 태극과 만물 사이에 ‘음양(2)’이라는 갈라짐과 ‘오행(5)’이라는다섯 단계의 배치가 가로놓이게 됩니다. 그 ‘이오(二五)’라는 사변의 다리를 건너는 순간, 천리와 본심 사이의 그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혼연(渾然)의 경계’가 끊어지고, 사람들은 또다시 그 오(五)의 자리를 지키는 예법과 명분의 위계에 묶이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다만 소자 또한 부족하여, ‘이오’를 대신해 그 혼연의 경계를 그려낼 도구를 끝내 찾지 못하였으니 그저 침묵으로 예를지켰을 따름입니다.
(정호의 고백이 끝나자, 주돈이는 깊은 사색에 잠겨 고개를 끄덕인다. 스승의 넓은 도량과 제자의 서늘한 직관이 고요히 마주하는 그 순간, 연못가 너머에서 월터 러셀과 윤홍식이 조용히 걸어 나와 정자 아래에 멈춰 선다.)
S#2. 영점(Zero Point)의 손님들 — ‘이오(二五)’에 갇힌 우주론의 한계
지상에서 아직 육신을 두고 삼매에 들어 있는 윤홍식이 천 년 전의 두 대현(大賢)을 알아보고, 정자 아래에서 두 손을 모아 깊이 예를 올린다. 월터 러셀 또한 가슴에 손을 얹고 정중하게 목례를 건넨다.
윤홍식
(깊은 존경과 감회를 담아)
지상에서 공부하고 있는 후학 윤홍식이라 합니다. 깊은 삼매 중에 염계 선생님과 명도 선생님 두 분 큰 스승의 문답을 뵙게 되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옆에 계신 분은 서양에서 빛과 파동의 기하학으로 우주의 이치를 밝혀낸 월터 러셀 선생님이십니다.
주돈이
(정자 난간에서 인자한 미소로 두 사람을 맞이하며)
허허, 먼 시공을 넘어 귀한 손님들이 오셨구려. 아직 지상의 생(生)을 살고 있는 후학의 맑은 의식이 이 자리까지 닿았다니 반갑기 그지없소. 어서들 올라오시지요.
주돈이의 권유로 러셀과 윤홍식이 정자 위로 올라와 예를 갖추어 앉는다.
러셀이 정자 주변에 수묵화처럼 펼쳐진 연못과 산수, 그리고 허공에 떠 있는 《태극도》를 번갈아 바라보며 감탄 어린 미소를 짓는다.
월터 러셀
염계 선생의 서당에 발을 들이니 참으로 흥미로운 기하학적 대조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정자 너머로 펼쳐진 동방의 산수화를 보십시오. 서방의 화가들은 관찰자의 두 발을 땅에 묶어두고, 외눈박이의 고정된 시점으로 사물을 통제하려는‘선원근법’에 매달렸습니다. 소실점을 그림 속 저 먼 외부의 끝에 찍어두었지요.
허나 지금 이 수묵화의 공간은 아래에서 산봉우리를 우러러보는 시선과 깊은 골짜기 너머를 들여다보는 시선, 그리고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 화폭 안에서 다차원적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선의 소실점이 그림 속 배경이 아니라, 그림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본심(本心, One Mind)’—즉 내면의 영점(Zero Point)—에 찍혀 사물이 나를 향해 걸어 나오는 ‘역원근법’의 파동을 띠고 있군요!
정호
(눈빛이 맑게 빛나며 무릎을 친다)
오호! 서방의 대학자께서 단숨에 우리 동방 서화(書畫)의 골수를 기하학으로 꿰뚫어 보셨습니다!
우리 화가들이 산수를 그릴 때, 우러러보는 ‘고원(高遠)’, 깊은 골짜기를 들여다보는 ‘심원(深遠)’, 아득한 수평선을 보는‘평원(平遠)’의 세 시선을 한 화폭에 담아내는 이치가 바로 그것입니다.
관찰자와 자연이 둘로 나뉘지 않고 내 마음의 중심에서 만물이 일체로 열리는 것, 그것이 바로 제가 평생 노래했던 ‘혼연일체(渾然一體)’의 시선입니다!
(정호가 조심스럽게 허공의 《태극도》로 시선을 옮기며)
헌데 러셀 선생, 우리 동방의 예술과 직관은 이토록 살아 숨 쉬는 다차원의 공간을 알고 있었건만, 어찌하여 스승님의 저 《태극도》 앞에서는 그 혼연의 입체감이 사라지고 답답한 막힘이 생겨났던 것인지, 기하학을 탐구하신 선생의 눈으로 헤아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월터 러셀
(허공에 떠 있는 2차원 평면의 《태극도》를 가리키며 온화하면서도 명징한 어조로)
염계 선생의 넓으신 학덕과 명도 선생의 투철한 혜안에 깊이 경의를 표합니다. 본래 상고 시대 동방의 도인들이 전하던 천문·내단의 도상들은 우주의 파동이 구심적으로 응축하고 원심적으로 방사하는 ‘살아있는 3차원 입체 회전도’였습니다.
허나 염계 선생님께서 도가와 불가의 드높은 기세에 맞서 유학의 도덕 형이상학을 세우려 하실 때, 그 입체적 파동의 회전축을 걷어내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2차원 평면의 ‘개념 순서도(Flowchart)’로 압축해 버리셨습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그 순서도의 한가운데에 고대 요순(堯舜) 이래 내려온 ‘이오(2와 5)’라는 사변적 틀을 그대로 가져다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돈이
(조금도 불쾌해하지 않고, 진리를 구하는 학자의 맑은 눈빛으로 귀를 기울이며)
오호, 내가 기댄 음양(2)과 오행(5)의 기하학에 어떤 한계가 있었는지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구려, 러셀 선생.
월터 러셀
(허공에 떠 있는 《태극도》의 2단계(음양)와 3단계(오행)를 부드럽게 가리키며)
염계 선생님, 우주의 근원인 하나가 움직여 양극의 ‘둘(2, 음양)’로 갈라질 때, 그 둘이 교차하는 한가운데의 결에는 무엇이 존재하겠습니까? 파동 역학으로 보면 그 자리는 어떠한 질량도, 치우침도, 사사로운 의지도 없는 ‘텅 빈 영점(Zero Point)’입니다.
제가 ‘부동의 자성광(Still Magnetic Light)’이라 부르고, 동방의 선지식들께서 ‘공적영지(空寂靈知)’ 혹은 ‘청정광명심(淸淨光明心)’이라 불렀던 순수한 본심(One Mind, 한마음)의 자리이지요.
정호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그 자리는 아무런 작위(作爲)가 없는 지극히 공정하고 텅 빈 중심입니다.
월터 러셀
그런데 고대의 제왕이었던 요순(堯舜)이 오행(五行)의 질서를 세워 천하를 다스리는 이른바 ‘제왕지도(帝王之道)’를 고안했을 때, 그들은 기하학적으로 매우 위험한 변형을 가했습니다.
저 《태극도》의 세 번째 단계를 보십시오. 수·화·목·금 사방(4)이 교차하는 그 텅 빈 영점(0)의 자리에, ‘토(土)’라는 다섯 번째 실체(5)가 올라타고 앉아 사방을 줄 세우고 통제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시소의 양끝(2)이 자유롭게 움직이려면 가운데 받침점(Fulcrum)은 스스로 무게를 갖지 않고 비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오(2와 5)’의 체계는 둘로 갈라진 결에 존재하는 그 텅 빈 영점의 자리에 누군가가 스스로 올라타 "내가 5(중앙·황극)다"라고 주장(참칭)하며 지배와 통제를 합리화하는 기하학에 지나지 않습니다.
윤홍식
(조심스럽고도 깊이 탄복하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제가 조금 전 러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깨달은 바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유학이 수천 년간제왕의 통치 체제 곁에서 구차한 예법에 매달려야 했던 근본 원인도, 결국 그 ‘텅 빈 영점’의 자리에 ‘5(제왕·예법·중재자)’를 앉혀놓는 ‘이오(二五)’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염계 선생님께서 도가와 불가에 맞서 유학의 형이상학을 세우려 하셨음에도, 그 도구로 ‘이오’를 쓰시는 순간 그 참칭된 중심(5)의 그림자가 도상 안에 그대로 남게 된 것이지요.
정호
(무릎을 가볍게 치며 맑은 탄성을 흘린다)
아...! 이제야 제 평생의 의문이 안개 걷히듯 밝아집니다!
천리(天理)와 내 마음이 직접 맞닿아 숨 쉬어야 할 그 텅 빈 영점의 자리에 ‘오행의 중앙(5)’이라는 실체적 매개가 들어앉아 있었으니, 제 아무리 정교하게 설명한다 한들 그 사이에 인위적인 계단과 이음매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군요!
주돈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깊은 감탄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과연... 과연 그렇구려!
백순이 내 《태극도》 앞에서 느꼈던 그 미묘한 막힘이 바로 그 ‘5’의 자리 때문이었다니!
헌데 러셀 선생, 만약 그 음양(2)과 오행(5)의 사다리를 거두어낸다면, 보이지 않는 형이상(形而上)의 본체와 보이는 형이하(形而下)의 만물이 대체 어떤 기하학으로 만나 ‘혼연일체’를 이룬단 말씀이오?
S#3. 입방체 파동장(Cubic Wave Field)과 구체(Sphere) —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연결
(월터 러셀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동방의 대학자를 향해 정중히 목례한 뒤, 정자 한가운데의 허공으로 손을 뻗는다.)
월터 러셀
염계 선생님, 그리고 명도 선생님. 보이지 않는 도(道: 形而上)와 보이는 물질(器: 形而下)을 잇기 위해 그 사이에 ‘5’라는 별도의 중재자를 둘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지상의 과학—즉 형이하학의 언어—을 빌려,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이 본래 어떻게 한 몸으로 맞물려 돌아가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러셀이 가볍게 손짓하자, 평면의 《태극도》 옆으로 투명하고 찬란한 빛의 3차원 격자 공간이 끝없이 펼쳐진다.)

월터 러셀
보십시오. 이것이 보이지 않는 ‘부동의 자성광(Still Magnetic Light)’이 허공에 세운 ‘입방체 파동장(Cubic Wave Field)’입니다.
이 파동장 안에서 무한 격자 구조로 연결되어 있는 저 투명한 육면체(Cube)들을 보십시오.육면체의 여섯 벽면과 그 중심 영점은 휘어짐(곡률)이 전혀 없는 ‘0’의 평면이며, 결코 움직이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절대 균형의 경계입니다.
명도 선생님, 이것이 바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천리(天理)’이자 형이상(形而上)의 자리입니다.
주돈이
(투명하게 빛나는 무한한 정육면체 격자들을 바라보며 경탄한다)
어느 한구석도 치우치거나 일그러짐이 없이 지극히 방정(方正)하구려. 중심이 텅 비어 있으되 천하의 모든 방위가 그안에 정연하게 서 있소!
월터 러셀
자, 이제 이 부동의 육면체(Cube)들 안에서 어떻게 보이는 만물(形而下)이 태어나는지 보시지요.
(러셀이 하나의 육면체 중심을 가리키자, 그 텅 빈 영점(Zero Point)에서 두 갈래의 빛이 파동을 일으키며 뻗어 나간다.)
월터 러셀
텅 빈 중심의 한마음(One Mind)이 사유할 때, 그 안에서 ‘움직이는 전기적 분극광(Moving Electric Divided Light)’이 양극으로 나뉘어 육면체의 여섯 벽면을 향해 방사됩니다. 이 움직이는 전기광이 보이지 않는 육면체의 평면 벽(영점의 경계면)에 부딪혀 반사될 때 일어나는 현상을 보십시오!
(육면체의 평면 벽면에 부딪혀 반사된 파동들이 내부로 되돌아오며 간섭을 일으키자, 반듯한 육면체 안에서 둥근 빛의 파문—구형 정재파(Spherical Standing Waves)—들이 겹겹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 구형 정재파들이 파동의 중심 마루에서 정면으로 충돌하여 응축되자, 마침내 눈부시게 회전하는 하나의 결정체—구체(Sphere: 별, 원자, 만물의 형상)—가 탄생한다!)

월터 러셀
두 분 선생께 이 이치를 거울의 비유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사방과 위아래 여섯 면이 한 치의 휘어짐도 없는 완벽한 평면 거울로 이루어진 육면체 방(Cube)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방의 텅 빈 정중앙(영점)에서 한 점의 밝은 등불을 밝히면, 빛이 여섯 거울 벽면에 부딪혀 일제히 방 안쪽으로 되쏘아집니다.
그렇게 여섯 방향에서 되돌아온 빛의 물결들이 방 한가운데 초점에서 정면으로 교차하며 겹쳐질 때, 허공에 눈부시게 둥근 입체 빛의 구슬(Sphere)이 또렷이 맺히는 것입니다!
거울 벽면(육면체(Cube)·형이상·천리)이 조금이라도 휘어지거나 스스로 움직인다면 가운데의 구슬(구체(Sphere)·형이하·만물)은 즉시 일그러지겠지만, 거울이 곡률 ‘0’의 부동(不動)을 지키고 있기에 그 안에서 가장 완벽한 구슬이 춤을 출 수 있는 것이지요.
정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빛의 구체와 육면체를 바라보며 전율한다)
아…! 여섯 면의 텅 빈 거울 방(Cube)이 곧 형이상의 천리(天理)요, 그 거울에 반사된 빛이 한가운데 맺은 구슬(Sphere)이 곧 형이하의 만물이로군요!
내 외숙부이신 자후(子厚, 횡거 장재) 어른께서도 생전에 《태극도》의 ‘이오(二五)’ 대신 ‘태허즉기(太虛卽氣) —텅 빈 태허의 허공이 곧 살아 움직이는 기(氣)의 본체이며, 얼음이 얼고 녹듯 모이고 흩어질 뿐이다’라고 갈파하셨는데, 외숙부께서 직관하신 그 ‘태허’의 기하학적 실체가 바로 저 투명한 육면체의 파동장이었습니다!
거울(Cube)과 구슬(Sphere) 사이에 무슨 별도의 단계나 ‘5’라는 중재자가 끼어들 틈이 있단 말입니까!
월터 러셀
(온화한 미소로 화답하며)
명도 선생님의 안목이 실로 정확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육면체(Cube)는 곡률이 ‘0’인 형이상(道·본체·부동의 자성광)이고, 그 안에서 구형 정재파의 충돌로 맺어진 구체(Sphere)는 곡률을 지닌 형이하(器·물질·움직이는 전기적 분극광)입니다.
구체(Sphere)로 응축된 빛은 결코 그 자리에 머물며 권력을 축장(Hoarding Gravity)하지 않습니다. 압축의 극점에 이르면다시 기꺼이 내어주어(Willing Relinquishment) 육면체(Cube)의 평면 벽(영점)으로 돌아가고, 그 벽면에서 다시 반사되어새로운 구체(Sphere)로 피어나지요.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본체와 보이는 만물이 영원히 숨 쉬는 ‘율동적 균형 교호작용(Rhythmical Balanced Interchange)’이며, 명도 선생께서 직관하셨던 ‘혼연일체(渾然一體)’의 우주존재론적 기하학입니다!
정호
(러셀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깊이 허리를 숙인다)
러셀 선생! 동방과 서방의 무수한 성현들이 보이지 않는 道(形而上)를 말하면서도, 그것을 보이는 器(形而下)와 어떻게이어야 할지 몰라 사변에 기대거나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헌데 선생께서는 형이하학인 과학의 언어로 형이상학과형이하학의 연결을 완벽히 입증하여 형이상학의 참모습을 밝혀내셨으니, 참으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성취라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S#4. ‘이오(二五)’에서 ‘삼일(三一)’로 — 천웅지도(天雄之道)의 공명
주돈이 또한 정자 한가운데로 걸어 나와, 투명한 Cube와 그 안에서 회전하는 Sphere의 빛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주돈이
(깊은 감회에 젖은 목소리로)
참으로 경이롭구려, 러셀 선생. 내 《태극도》와 선생의 이 입체 기하학을 나란히 놓고 보니, 어찌 아니라고 할 수 있겠소. 내가 그렸던 도상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중심에 ‘5(토)’를 세워 만물을 갈라놓는 평면의 도식이었으나, 선생이보여준 우주는 텅 빈 중심과 평면의 벽(Cube)이 양극의 파동(Sphere)을 품어 안고 스스로 호흡하는 살아 있는 입체요. 이 이치를 수리(數理)로 이른다면 무엇이라 불러야 합니까?
월터 러셀
이것은 ‘이오(2와 5)’가 아니라 ‘삼일(3과 1)’입니다, 염계 선생님.
움직이는 양극의 두 전기광(2)과, 그 둘의 중심이자 반사면이 되어주는 부동의 자성광(1)—이 셋(3)이 한 치의 오차도없이 균형을 이루며 회전하되, 그 본질은 결코 나뉜 적 없는 오직 하나의 빛(1)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곁에서 경청하던 윤홍식이 조용히 앞으로 나서며 두 유학의 거장에게 아뢴다.
윤홍식
염계 선생님, 그리고 명도 선생님. 러셀 선생님께서 과학의 언어로 밝혀내신 저 ‘삼일(3과 1)’의 기하학은, 놀랍게도 요순(堯舜)이 ‘이오(2와 5)’의 제왕지도를 세우기 훨씬 이전, 동방 배달족의 선조들이 남긴 《천부경(天符經)》 및 《삼일신고(三一神誥)》의 가르침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맞닿아 있습니다.
정호
(귀가 번쩍 뜨인 듯 윤홍식을 바라보며)
동방의 옛 경전인 《천부경》과 《삼일신고》 말씀이십니까?
윤홍식
예, 명도 선생님.
염계 선생님께서 《태극도설》의 첫머리에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 선언하셨던 그 텅 빈 본원이, 《천부경》에서는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로 열립니다.
다만 《천부경》과 《삼일신고》는 그 하나(一)가 현상계로 펼쳐질 때 ‘이오(2와 5)’라는 위계의 계단을 거치지 않습니다. 근원의 하나인 ‘부동의 자성광’이 부동의 중심(1)과 양극의 파동(2)이라는 세 극으로 나뉘되 그 근본은 다함이 없다는 ‘석삼극 무진본(析三極 無盡本)’, 그리고 하나를 잡으면 셋을 머금고 셋이 모이면 즉시 하나로 돌아간다는 ‘집일함삼 회삼귀일(執一含三 會三歸一)’의 순환으로 직결됩니다!
앞서 살폈듯 ‘이오(二五)’가 텅 빈 영점의 자리에 ‘5(황극·중재자)’라는 실체를 앉혀 만물을 통제하려 했던 제왕지도(帝王之道)의 틀이었다면, 이 고대의 ‘삼일(三一)’은 저 투명한 육면체(Cube)처럼 중심을 온전히 비워두어 만물이 구차한 매개나 억압 없이 스스로 공명(Resonance)하게 하는 ‘천웅지도(天雄之道)’였던 것입니다!
명도 선생님께서 평생토록 그리워하셨던 ‘천리와 본심의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바로 이 삼일(三一)의 원형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었습니다!
주돈이
(눈을 지그시 감고 긴 숨을 내쉰 뒤, 맑고도 시원한 웃음을 터뜨린다)
중심에 올라타 지배하려는 ‘이오(二五)’의 제왕지도와, 중심을 텅 비워 만물과 공명하는 ‘삼일(三一)’의 천웅지도라!
백순아, 들었느냐? 네가 내 《태극도》의 ‘이오’ 앞에서 차마 발을 떼지 못하고 ‘혼연일체’만을 노래했던 것은, 네 본심(本心)이 이미 수천 년 전 잃어버린 저 ‘삼일(三一)’의 율려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구나!
(주돈이가 손바닥을 들어 허공에 떠 있던 자신의 《태극도》를 가만히 쓸어낸다. 그러자 먹선으로 그려져 있던 2차원의 도상이 맑은 빛의 입자로 흩어지며, 월터 러셀이 펼쳐놓은 Cubic Wave Field의 격자 속으로 흔적 없이 녹아든다.)
주돈이
(정호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며)
내가 평생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을 사랑한다(愛蓮) 하면서도, 미처 ‘이오’라는 오래된 사변의 진흙을 다 털어내지 못했었구나.
오늘 러셀 선생의 빛나는 기하학과 윤 선생의 맑은 다리 놓음 덕분에, 천 년 만에 스승과 제자 사이에 가로놓였던 마지막 베일이 걷혔소.
정호
(스승을 향해 깊이 감격의 예를 올리며)
스승님의 그 허물없는 ‘광풍제월’의 도량이야말로 이미 텅 빈 영점 그 자체이십니다!
이제 ‘이오’의 가림막이 사라졌으니, 천리와 본심, 형이상과 형이하가 저 육면체(Cube)와 구(Sphere)의 춤사위 속에서온전히 하나로 공명합니다!
S#5. 에필로그 — 깨어난 혼연(渾然)의 아침
정자 위로 쏟아지는 부동의 자성광 속에서, 무한히 연결된 육면체(Cube)들과 그 안에서 구형 정재파로 피어오르는 구(Sphere)들이 장엄한 율동적 균형 교호작용(Rhythmical Balanced Interchange)의 교향곡을 울린다.
삼매의 시간이 다해 지상의 새벽빛이 윤홍식의 의식 너머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윤홍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돈이, 정호, 그리고 월터 러셀 세 대학자를 향해 정중히 합장하며 고개를 숙인다.
월터 러셀
(따뜻한 미소로 윤홍식을 바라보며)
윤 선생, 이제 지상의 서재로 돌아갈 시간이군요. 용수 보살의 찻자리에서 확인한 ‘공(空)의 영점’과, 이곳 애련당에서 확인한 ‘혼연일체의 삼일(三一) 기하학’을 가슴에 품고 내려가십시오.
정호
(온화한 미소로 배웅하며)
후학이시여, 지상에 내려가시거든 천리와 인간의 본심 사이에 그 어떤 거짓된 ‘5’의 중재자도 필요치 않음을, 우리 모두가 이미 텅 빈 영점에서 우주와 혼연일체로 공명하고 있음을 전해주시구려.
윤홍식
(가슴 깊이 울리는 공명을 느끼며 세 스승에게 마지막 큰절을 올린다)
세 분 큰 스승님의 가르침, 뼈에 새기겠습니다. 중심을 참칭하는 ‘이오’의 사변을 걷어내고, 텅 빈 중심에서 만물이 스스로 빛을 주고 되주는 ‘삼일(三一)’의 천웅지도를 지상에 오롯이 전하겠습니다!
(주돈이, 정호, 월터 러셀이 나란히 서서 온화한 미소로 손을 들어 배웅한다. Cube와 Sphere가 빚어내는 찬란한 파동의 빛 속으로 윤홍식의 의식이 서서히 침잠하며, 천 년의 한계를 넘어선 동서양의 기하학이 하나의 우렁찬 공명으로 천상을 가득 채운다.)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