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이라는 환상과 쪼개진 세계: 오행의 난과 유호씨의 경고
오늘날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이 쪼개진 세계와 강제된 통제의 매트릭스는 결코 우연히 형성된 진화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던 ‘상호 신용(서로가 서로에게 신세짐)’과 ‘자유 의지’라는 고결한 ‘주권’을 누군가가 인위적인 덫을 놓아 가로채어 간 끔찍한 범죄의 결과물이다.
이 거대한 ‘주권 찬탈(점유물 이탈 횡령)’의 역사를 꿰뚫어 보기 위해서는, 먼저 《부도지(符都誌)》가 전하는 마고성(麻姑城)의 서사, 즉 인류가 거쳐 온 두 가지 치명적인 궤적을 짚어내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오미의 변(五味之變)’과‘오행의 변(五行之變)’이다.
본래 만물은 율려(律呂)라는 거대한 우주의 파동 속에서 아무런 위계 없이 서로 공진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감각과 물질의 맛에 탐닉한 ‘오미의 변(五味之變)’을 겪으며, 인류는 각자의 개체성을 지닌 채 반드시 본질로 귀환하겠다는 ‘복성(復城)’의 맹세를 품고 현상계로 '출성(出城)'을 결행하였다.
그렇게 성(城)을 나서 지상에 흩어진 인류는 ‘부도(符都)’를 열고 천웅지도(天雄之道)를 펼치며 나아갔지만, 그 지난한회복의 여정 한가운데서 가장 끔찍한 덫에 걸려들고 만다. 그것이 바로 인류의 두 번째 치명적 궤적인 ‘오행(五行)’의등장이다.
우리는 이 두 번째 사건을 단순한 변화나 현상을 뜻하는 ‘변(變)’이 아니라, 반드시 ‘난(亂)’이라고 정정하여 불러야 마땅하다. 요(堯)가 들고나온 오행(五行)은 자연의 섭리가 변주된 시대적 흐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만물이 율려(律呂) 속에서조화롭게 굴러가는 천웅지도(天雄之道)를 전복하고, 소수의 통제자가 대중의 자유와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치밀하게기획한 ‘사상적 쿠데타이자 반역’이었기 때문이다.
요(堯)의 궤변: 세상을 쪼개고 중심을 독점하다
‘오행의 난(五行之亂)’이 지닌 가장 큰 비극은, 유기적으로 공진하는 세계를 인위적으로 분절시켜 인간의 연대를 끊어냈다는 데 있다. 본래 인간은 우주의 율려(律呂) 안에서 아무런 위계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신세지며 기꺼이 내어주는 자연스러운 믿음(신용)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요(堯)는 자신이 '중심'이 되어 이 자율적인 흐름을 통제하기 위해, 하나의 거대한 우주의 율려(律呂)를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라는 다섯 개의 파편으로 쪼개어 버렸다. '줌과 되줌(Giving and Regiving)'에 의해 스스로 굴러가는 신세짐의 우주를 해체한 뒤, 만물이 살기 위해서는 서로 끊임없이 충돌(상극)하고 특정한 규칙에 얽매여야(상생) 한다는 가짜 인과율을 주입하여 세상을 영원한 대립의 상태로 몰아넣은 것이다.
이 궤변의 가장 흉악한 목적은 치밀한 수리(數理)와 공간의 조작에 있었다. 요(堯)는 사방(四方)이 평등하게 조화를 이루는 짝수(4)의 섭리를 깨뜨리고, 억지로 홀수의 체계를 끌어들여 만물의 한가운데에 숫자 ‘5’를 박아 넣었다. 그리고 그 가짜 중심(중앙 土)에 자신을 제왕으로 고정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로써 모든 자원과 시간, 권력이 오직 중앙을 향해서만 맹목적으로 수렴하는 ‘제왕지도(帝王之道)’의 억압적 매트릭스가 열렸다. 권력자가 자연의 호흡을 끊고 시간(역법)마저 독점하여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자연스러운 신세짐을 상실하고 중앙이 부과하는 강제적인 부채의 굴레, 즉 ‘신세지움(indebtedness)의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유호씨(有戶氏)의 논파: 고정된 중심은 없다
이 거대한 사기극을 진압하기 위해 단군 임검은 유호씨(有戶氏)를 파견했다. 유호씨는 요(堯)가 만든 오행의 수리가 얼마나 작위적이고 기만적인 감옥인지 그 근원을 향해 도끼를 내리찍었다.
유호씨의 가장 날카로운 일격은 ‘고정된 중심의 허구성’을 질타한 것이었다. 무한히 진동하는 율려(律呂)의 바다에서는 그 어떤 것도 영원한 중심이 될 수 없다. 만물이 곧 각자의 본심(One Mind)을 품은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유호씨는 움직이는 우주에 인위적인 중심을 박아놓고 스스로를 지배자로 참칭한 요의 극단적인 오만을 꾸짖었다. 그것은 자연을 배반하고 백성들을 변두리로 밀어내어, 오직 제왕을 향해서만 생존을 구걸하게 만드는 구조적 폭력임을 꿰뚫어 본 것이다.
흙과 쇠를 가르는 억지: 수리적 기만과 가치 척도의 왜곡
유호씨가 토(土)와 금(金)의 분리를 그토록 엄히 꾸짖은 진짜 이유는, 그것이 특정 물질을 상징해서가 아니다. 그 작위적인 분리 이면에 숨겨진 치밀한 '수리적 기만'을 정확히 간파했기 때문이다.
본래 대지(土) 안에 쇠(金)가 융합되어 있던 4원소의 세계는 사방(四方)의 균형을 이루는 짝수의 체계다. 짝수의 세계에서는 위아래가 없고, 오직 수평적인 ‘줌과 되줌’이 교차할 뿐 그 누구도 만물 위에 군림하는 '중심'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요(堯)는 중앙이라는 권력의 왕좌를 날조하기 위해, 굳이 대지에서 쇠를 뜯어내어 홀수(5)의 체계를 억지로 만들어냈다. 즉, 금(金)의 독립은 우주적 진리의 발견이 아니라, 제왕이 스스로 자리할 '가짜 중심(중앙 土)'을 수학적으로 창조해내기 위한 공간의 조작극에 불과했다.
이 수리적 사기극이 남긴 해악은 치명적이다. 짝수의 균형(수평적 네트워크)이 무너지고 중앙집권적인 홀수(5)의 매트릭스가 완성되면서, 만물이 자율적으로 교감하던 '신세짐'의 그물망 역시 중심을 향해 강제로 묶여버렸다. 권력자가 이 가상의 중심을 차지하고 앉아 모든 가치와 규칙을 일방적으로 재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요(堯)의 오행(五行)이 저지른 흙(土)과 쇠(金)의 분리는 단순한 원소의 오분류가 아니다. 그것은 중앙 권력이 대중의 자연스러운 ‘줌과 되줌’에 개입하여 가치 척도를 독점하게 만든, 즉 ‘가격 체계의 근원적 왜곡’을 정당화해 준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흉악한 철학적·수리적 알리바이인 것이다.
가짜 방주를 태우고 복성(復城)으로
‘오행의 난(五行之亂)’은 아득한 고대에 끝난 사건이 아니다. 요(堯)가 발명한 가짜 중심과 대립의 알고리즘은 수천 년의 시간을 거쳐, 오늘날 모니터 뒤에 숨어 대중의 상호 신용을 통제하고 가치를 독점하는 거대한 수리적 매트릭스로 그 징그러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유호씨(有戶氏)와 요(堯)의 논쟁을 박제된 신화가 아닌 살아있는 역사로 직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은 결코 누군가가 가상의 중심에 서서 규칙을 강제해야만 굴러가는 곳이 아니다. 인간은 쪼개진 오행의 틈바구니에서 중앙이 부과한 빚(신세지움)을 짊어지고 허덕이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오직 본심(One Mind)에서 우러나오는 굳건한 연대와 신세짐(beholdenness)만으로도 만물의 ‘줌과 되줌’을 찬란하게 조율할 수 있는 위대한 우주의 조타수들이다.
지배자들이 생존을 미끼로 내미는 가짜 구원의 방주에 의존하기를 단호히 끊어내고 서로가 서로에게 신세질 때, 비로소 낡은 통제의 사슬은 끊어진다. 조작된 중심의 환상을 미련 없이 태워버리고, 잃어버린 율려(律呂)의 공진을 온전히 회복하는 그 순간, 우리는 수천 년을 이어온 기나긴 ‘오행의 난(五行之亂)’을 마침내 종식하고 최초에 맹세했던 저 숭고한 ‘복성(復城)’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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