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본질을 잊고 사는 우리들 자신에게
Ⅰ. 서문: 우리는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가
오늘날 인류는 숫자와 데이터로 된 전자 신호를 ‘화폐’라 부르며, 그것이 곧 부(富)이며 권력이라 믿는다. 지폐와 동전은 그림자에 불과하며, 우리의 모든 교환은 디지털 신호와 기록에 의존한다.
그러나 인류는 잊었다. 화폐는 본래 누군가의 배려와 나눔, 즉 기꺼이 포기한 것에 대한 ‘신세짐(감사)’을 기억하기 위한 증표였다는 사실을. 그것은 누군가의 마음에서 우러난 베풂의 기록이었고, 그 기록을 통한 관계의 맥락이 바로 부(富)의 순환이었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는 ‘신세짐(감사)’을 잊고, ‘신세지움(indebtedness)’에 길들여졌는가?
그 해답은 생명의 기원, 즉 인간 존재가 안고 있는 구조적 결핍에서 비롯된다. 지구 생명의 진화 속에서 식물은 엽록체를 통해 스스로 에너지를 생성하지만, 동물은 외부 유기물을 섭취한 뒤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이를 분해하여 에너지를 얻는다.
인간 역시 이러한 ‘종속 영양’ 구조 속에서 태어났으며, 존재 자체가 결핍이었기에 생존을 위해 타인의 몫을 탐하고, 약탈을 정당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결핍은 단지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 내면 인식의 한계로 고착되었고, 문명은 경쟁과 소유, 강탈을 전제로 하는 ‘종속경제’라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 구조의 심장부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작동해온 ‘화폐’가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신세짐(감사)’의 증표가 아니라, ‘신세지움(indebtedness)’이라는 권력의 도구로 변질되었다.
Ⅱ. 환웅의 통찰, 신시(神市)의 기억
그러나 약 6천 년 전, 인류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늘을 이은 환웅의 가르침을 따르던 조상들이었다.
그들은 깨달았다. 결핍은 외적인 실체가 아니라, 내면 인식의 한계에 불과하며 풍요와 충만은 배려와 나눔 속에서 비로소 실현된다는 것을.
그리하여 그들은 새로운 길을 열었다. '신세짐(감사)'이라는 윤리적 감정을 중심으로 한 관계의 회로, 즉, 기꺼이 포기함과 그에 대한 감사가 자연스럽게 순환되는 에너지의 회계 시스템, 바로 신시(神市)라 불리는 찬란한 ‘순환경제’를 구현하였다.
그 경제의 중심에는 ‘배려와 나눔을 위한 기꺼이 포기함의 기록’, 즉 ‘신세짐(감사)’의 증표가 있었다. 그 증표는 소유가 아닌 기억이었고, 강탈이 아닌 선물이었으며, 물건이 아닌 기록이었다. 예컨대, 공동체 내에서 베푼 음식이나 노동이 훗날 보살핌으로 되돌아오는 방식처럼, 증표는 단지 그러한 관계의 흐름을 기록하고 상기시키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것은 곧, “나는 기꺼이 포기했다. 그러니 당신도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포기할 것이다.”라는 관계의 약속이었으며, 바로 그 신뢰와 순환이 공동체의 부(富)를 이루는 본질이었다.
Ⅲ. 화폐의 전도: ‘신세짐’에서 ‘신세지움’으로
그러나 문명은 다시 그 길을 잃었다. ‘신세짐(감사)’의 증표를 발행하는 주체가 개개인들로부터 소위 ‘믿을 만한 기관’에 위임되어 소수 권력자들에 의해 독점되는 순간, 그것은 공동체의 약속에서 권력의 도구로 전락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위조 방지라는 기술적 명분을 내세웠고, 이후에는 ‘공공 신뢰’를 핑계로 증표 발행 권한을 자신들만의 손아귀에 집중시켰다.
결국, 기꺼이 포기함 없이도 화폐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고, 감사의 순환 없이도 타인을 조종할 수 있는 수단이생겨났다.
증표가 지녔던 본래의 힘—‘기꺼이 포기함에 대한 감사의 에너지’—이 왜곡과 독점으로 사라지자, 그들은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가치’라는 유령을 만들어냈고, 그 자리는 ‘신세지움(indebtedness)’이라는 강압과 폭력으로 채워졌다.
이 ‘신세지움’은 본래 ‘신세짐’의 또 다른 이름이었던 ‘신용’, 즉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잠재적 가능성인‘음(-)의 부(富)’를, 실물 자산처럼 공간을 점유하는 ‘양(+)의 부(富)’로 바꾸어 놓았다. 그 결과 화폐는 더 이상 감사의 기록이 아닌 채무의 명령서가 되었고, 관계를 잇는 매개가 아닌, 종속과 수탈을 정당화하는 ‘정치화폐’로 전락했다.
마치 햇빛이 태양 그 자체는 아니듯, 화폐라는 증표 또한 부(富)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인류는 여전히 거짓 태양과 거짓 부(富)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Ⅳ. 선언과 결어: 신세짐의 회복, 무진장(無盡場)의 문을 열며
우리는 다시 묻는다. “화폐란 무엇인가?”
우리는 선언한다. 화폐는 누군가가 기꺼이 포기한 부(富)에 대한 감사의 기억, 곧 ‘신세짐(감사)’의 흔적이며 기록일뿐이다. 인간은 사적인 존재이자 동시에 공적인 존재이다. 화폐는 ‘관계’라는 공적 차원에서 에너지의 생성과 순환을 매개하는 매질(媒質)일 뿐, 그 자체로는 어떠한 실체적 힘도 지니지 않는다.
우리는 '신용의 윤리'를 회복할 것을 선언한다. 신용이란 인간 사이에서 나누는 가장 깊고도 섬세한 약속이며, 그것은 감사와 책임, 배려와 나눔의 관계를 통해서만 살아 숨 쉬며 자라날 수 있다. 우리는 이 선언을 바탕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신세짐’이라는 윤리적 토대 위에 금융을 재구성하고, 창조적 순환이 이루어지는 경제, 그리고 상호 신뢰와 배려가 일상이 되는 사회를 함께 이루어 갈 것을 다짐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새로운 화폐가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배려와 신뢰를 바탕으로 다시 짜여진 '새로운 관계의 설계'이다. 금융은 결국 인간관계를 매개하는 시스템이며, 신용은 숫자가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과 그 서사를 기록하는 도구여야 한다.
우리는 거부한다. 화폐를 통해 타인을 지배하는 모든 ‘신세지움(indebtedness)’의 구조와, ‘가치’라는 환영을 조작하는 모든 폭력 시스템을.
우리는 회복한다. ‘기꺼이 포기함’과 ‘감사의 마음’을 중심으로 한 배려와 나눔의 순환 구조를.
우리는 구축한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비정치적이며, 비강제적이고, 비약탈적인 통화 시스템을.
태양은 어느 누구에게도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다. 예컨대 우리는 햇빛을 쬐는 데 요금을 지불하지 않는다. 햇빛은누구의 것도 아니며, 누구도 그 빛을 독점할 수 없다. 기록은 부(富)가 아니며, 신뢰는 인쇄할 수 없고, 감사는 저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것들이야말로 부(富)의 진정한 순환을 이끄는 힘이다.
우리는 다시 신시(神市)의 기억을 되살릴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가 서로에게 신세짐’을 통해 무진장(無盡場)의 문을 활짝 열 것이다.
“새로운 통화는 새로운 인간상을 전제로 하며, 새로운 인간상은 새로운 통화를 창조할 것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